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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7 22:54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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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1

 '군의관님 XX대대장님께서 통화 원하십니다'

당직을 서다보면 종종 이런 전화가 옵니다. 제가 속한 부대의 간부라 모른척 하기도 그래서 받았습니다. 

 '군의관, 내가 기침이 심해. 밤새 잠을 못잤어'

 대부분 이런 전화는 이런식으로 약 처방해달라는 전화일 경우가 많습니다. 저를 비롯해 같이 일하는 군의관들은 원칙적으로 직접 진료 후 필요한 처방을 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하고 있습니다. 원격진료는 아직 우리나라 의료법에서 합법화되지 않았고, 군에서도 일부 진료가 제한되는 격오지에서만 부분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갈 수는 없고 그래서... 병사를 보낼테니까 약 좀 지어줘'

 다른 사람같았으면 안된다고 거절했겠지만, 이 분은 워낙 연세도 많으시고 서로 알고있는터라 그냥 넘어가기로 합니다. 그것보다 예전에 다른 군의관이 이 분께 이런 식으로는 처방을 해드릴 수 없다고 정중히 말했다가 자신의 계급을 운운하며 말다툼을 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부분이 더 컸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의무기록없이 약을 처방한 것이니 '불법'입니다.

#사례 2
 주말의 부대도 저녁 9시 30분이면 점호를 시작으로 취침 준비에 들어갑니다. 저 역시 이 시간 이후로는 환자가 거의 안오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집니다. 하지만 간간히 이 때 환자가 옵니다. 아파서 오는 환자한테 그러면 안되지만 쉴려고 마음먹은 상태에서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조금 짜증나기 마련입니다.

 9시 30분이 넘어 환자가 한명 왔습니다. 건장한 체격의 병사 한명이 무척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옵니다.

 '어디가 불편해? (약간 퉁명스럽게)'

 '머리가 아픕니다'

 계급을 보니 이등병이고 표정도 안좋아 보여 꾀병같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남들 잘려는 시간에 이 추위를 뚫고 의무대까지 온 것을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체온을 재보니 39도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심하진 않아도 과호흡 소견도 보이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아팠냐?'

 '아침부터 아팠습니다'

 우선 열부터 떨어뜨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이 해열제 주사부터 놓고서 나머지 진찰을 했습니다.

 '아침부터 아팠는데 왜 지금왔어?' 

 제가 가장 퉁명스러운 이유일 것입니다.

 '좀 참다가 괜찮은 것 같아서 버텼는데 면회 끝나고 나서부터...'

 휴... 그 놈의 면회 때문에 아픈 것도 참다가 온 것이였습니다. 통제된 집단 생활에서 휴가, 외박, 면회는 어쩌면 밥 다음으로 중요한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라는 것을 맛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휴가 때문에 당장 입실이나 외진이 필요한 병사가 그것을 거부하기도 하고, 입실한 상태에서도 면회가게 해달라고 통사정하는 병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상황보다 더 짜증나고 화가 나는 상황은 병사가 아파도 간부가 훈련이나 작업 때문에 진료를 제한하는 경우입니다. 당장 이 친구가 빠지면 일이 힘들어지고 윗사람한테 욕먹을 것이기 때문에 일과 시간 이후에 가도록 하거나 나중에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고 직책과 업무는 다르지만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지만 어떤 사람은 '계급'을 앞세워 군의관에게 불법 진료행위를 하도록 강요하고, 어떤 사람은 '돈'보다 더 절실한 것 때문에 자의로, 때로는 타의로 진료를 하지 않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군의관인 저는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존재의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술을 국가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이 잘 들지 않습니다. 장군의 변비가 이등병의 충수돌기염보다 더 응급으로 여겨지는 상황이 이 곳에서는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국방부 블로그 만화로 인해 군의관들이 분노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방의전원(혹은 국방의학원) 홍보를 위해 만든 만화에는 저와 같이 3년 의무복무하는 단기 군의관들의 임상경험이 부족하여 많은 오진과 의료사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이 결코 임상경험을 쌓기에 짧지 않은 시간이였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군의관들의 실력부족이 그들이 바라보는 오진과 의료사료의 원인일까요? 이곳의 군의관들은 전역하여 몇년 후에는 '명의'라 불리는 교수님이 되실 분들도 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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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7 22:03

의사는 약만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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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한파로 인해 더욱더 어깨가 움츠러드는 겨울입니다. 진료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환자 추이로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는데, 요새는 소위 '감기'가 대세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상기도 감염증'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 부대의 진료실 수준은 초등학교 양호실 수준이기 때문에 증상만으로 진단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크리스마스 다음날은 당직을 섰습니다. 일요일 당직은 부대의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반면, 남들 쉬고 있을 때 의무대 당직실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한 기분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책도 보고 공부도 했었지만 (진짜?--;) 요새 마음이 좀 싱숭생숭한지라 그저 TV보며 멍때릴 때가 많습니다.

 추운 날씨에 당직실에 있는 온풍기를 최대로 틀어놓고 TV를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목이 칼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전 편도가 남들보다 큰 상태로 목이 쉽게 잘 붓기에 민감한 편입니다.게다가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어 환경에도 예미한 편입니다.

 

부대에 있는 냉온풍기입니다. 여름엔 에이컨, 겨울엔 히터기능을 합니다.


사진의 기계는 당직실과 더불어 환자들이 입실(혹은 입원)하는 병실과 진료실에도 한대씩 있습니다. 사실 제 손으로 청소해 본적도 없고, 청결 상태를 확인해본 적도 없습니다. 몇달전부터 소리가 커서 기계에 이상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었는데 이참에 잘은 모르지만 청소 상태를 들여다봅니다. 분명 필터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기계 하단부의 전면부를 뜯어봤습니다. 커다란 팬이 있었지만 필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옆 부분에 먼지가 잔뜩 낀 필터가 보였습니다.

청소 전 필터사진


 와우~ 먼지가 껴도 이렇게 많이 껴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 이 먼지가 그대로 온풍기를 타고 나와 제 목을 자극했던 것 같습니다. 색깔이나 모양으로 봐서 최근에 쌓인 것들로는 안보이시죠? 우선 이것을 들고나와 야외에서 턴 뒤에 물로 씻었습니다. 문득 병실과 진료실에 있을 온풍기의 필터도 생각났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병실에는 감기 환자들이 있었는데 아침에 회진돌며 불편한 점을 물으니 목이 칼칼하다고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역시나 그 곳의 필터도 위의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환자들이 아파서 치료받으러 오는 의무대가 이런 불량한 위생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니... 환자뿐 아니라 병사들에게 부끄러워졌습니다. 즉시 의무대 병사들에게 필터를 청소하라고 했습니다.

필터 청소 후 모습


 제가 전공의 시절 한 알레르기 내과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여자임에도 알레르기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교수님께서는 특이 환자들에게 잔소리 많이 하시기로 유명하십니다. 제 동생도 아토피 피부염이 너무 심해 제 소개로 진료를 받았었는데, 진료 후 잔소리에 질려서 다시는 진료를 보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전국에서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교수님은 약물보다는 생활습관 교정, 환경개선등을 더 중요시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말씀도 많아지고 때로는 환자를 혼내시기도 하십니다. 일부 환자들은 그런 교수님 진료 방식에 반발하기도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실제로 호전이 되어 교수님에 대한 굳은 신뢰를 갖는 모습을 더 많이 봤었습니다. 환자가 가지고 있는 '병'만을 보는게 아니라 병을 가진 그 '환자'를 보는 것이 소위 말하는 명의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사는 단지 약만 주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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