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간 연평도 사격 훈련 때문에 주말에도 출근할 뻔 했습니다. 주말간 불안한 휴식을 취해서 몸이 편하기는 하지만, 심적으로 불안한 마음은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말하면 전방에서 고생하는 다른 사람들이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군의관 생활 한지도 1년 반 정도가 지나가면서 저의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쯤 얼마전 결핵 환자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내과 전문의인지 모를만큼 대부분 감기나 피부염 환자들만 대하다가 간만에 '결핵'이라는 나름 중한(?) 질환을 보니 저의 정체를 다시 한번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키크고 늘씬한 병사가 한명 들어옵니다. 가슴이 아프다고하면서 들어왔습니다. 옳거니... 허접했던 순환기 내과 치프 레지던트 (chief resident : 수석 전공의)였던 과거력을 지난 저로써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년이나 노년 환자들에게 발병률이 높은 심근경색을 포함한 관상동맥질환-쉽게 말하면 심장 먹여살리는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질병-은 군대에서는 적지만 간혹가다가 부정맥-심장의 리듬이 불규칙한 질병-으로 오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니관 : 가슴이 어디가 아프니?
키크고 늘씬한 병사(일명 '키늘이') : (손으로 가리키며 : 우측 아래쪽 가슴을 가리켰습니다) 여기가 아
픕니다.
---------------------------------- 중 략 ------------------------------------
구니관 : 주로 어떨 때 아프냐?
키늘이 : 숨 들여마실 때 아픕니다.
구니관 : 아픈지 얼마나 되었는데?
키늘이 : 2달정도 되었습니다.
허걱... 2달?
구니관 : 2달동안 아프면서 왜 안왔냐?
키늘이 : 어쩌구 저쩌구...
제가 아무래도 1년동안 심장내과에서 일해서 그런지 증상에 대한 원인을 자꾸 심장쪽으로 몰아가는 나쁜 습성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혈압, 맥박 재고 심음 듣고, 물론 그 전에 흉통의 특징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친구가 말하는 흉통의 원인이 심장 쪽이라면 숨을 들여마실 때 아프지는 않을텐데 이 친구는 정말 그 말을 강조해서 했습니다.
상의를 벗기고 폐음을 청진해봤습니다. 젊은 녀석의 흉통 중에는 기흉이라고 해서 폐가 오그라드는 질병도 원인일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이 점을 염두해두고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키늘이는 키크고 날씬하고 게다가 흡연도 한다고 하니 딱 기흉에 적합한(?) 친구입니다. 1달전에도 청진으로 기흉을 잡아낸 경우가 있어서 꼭 확인해봐야 합니다.
어라? 폐음을 들어보니 우측이 잘 안들리는겁니다. 오호라~ 기흉인가 보구나. 의무대의 X-ray는 100장정도 찍으면 1장정도 제대로 나오는 질낮은 X-ray이지만 찍어봅니다. 기흉으로 나오면 이 친구를 어느 병원으로 보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의무병이 X-ray를 들고 왔습니다. 아! 이런... 흉부의 정면 사진말고 우측 측면 사진도 찍었어야 하는데 제가 깜빡 했습니다. 의무병에게 그거 한장 더 찍으라고 하고 X-ray는 view box가 거는 순간... 허걱...
구글에서 또 퍼왔습니다. --;
흠... 키늘이의 X-ray를 보관했다가 사진을 찍어 올렸으면 좋았겠지만, 병원에 보내면서 X-ray도 같이 보냈습니다. 그래서 또 이렇게 구글에서 퍼왔다는... --; 키늘이는 우측에 좌측과는 달리 반달판 모양의 소견이 보였습니다. 으잉? 아! 뭐 이런 반응이 있은후에 의무병에게 추가적으로 찍으라고 한 X-ray를 취소시킨 후 병사를 병원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허구한날 잘 모르는 무릎, 허리 통증 환자들한테 아는 지식 모르는 지식 동원해 설명하다가 이런 내과적 환자를 간만에 보니 설명할려는 욕구가 100만배 튀어올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구니관 : 너 혹시 전에 결핵 앓거나 가족중에 결핵 앓은 적 없니?
키늘이 : 네 없습니다.
구니관 : (X-ray 가르키며) 이게 이래서 저렇게 어쩌구 저쩌구...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
키늘이 : (당황하며) 치료는 되는 병입니까?
구니관 : 응. 그런데 일단 저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는거고 검사를 해봐야 결과에 따라 치료가
달라지는 것이니까 일단 검사부터 해보자
대부분 이런 친구들에게 병원으로 가라고 하면 겁부터 먹습니다. 뭔가 의무대에서 해결해주길 바라는 눈치가 있습니다.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예상했던 대로 결핵이라는 진단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저같은 일개 야전 단기 군의관들의 고생은 시작됩니다. 이제 부대 윗선에서 왜 이런 환자가 발생했는지에서부터 예방법은 무엇인지 들들 볶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럴 때 군의관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해주면 좋겠지만, 대부분 '계급'이 응급인 이 곳에서는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신종플루'로 만연했던 작년 '방역'을 하라고 했던 곳이 이곳이니까요 --;
결국 어제 같은 생활관에 있는 11명의 병사를 진료봐야 했습니다. 그것도 X-ray가 질이 떨어져 2명을 제외하고는 주말간 격리 후 군병원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키늘이는 의무대에 격리된채 2주동안 독한 결핵약을 복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 학생때부터 결핵을 접했습니다. 저와 동명이인이였던 학교 동기가 결핵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2주동안 학교 수업 빠지고 집에서 지내는게 부러웠었는데 전공의 때 결핵약 먹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접하고서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는 학교는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당시 그 친구와 같은 방에서 살던 친구가 부랴부랴 인근병원에서 검사받느라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결핵은 '후진국' 병이라고 불릴만큼 소위 환경적으로 지저분한 곳에서 잘 생기는 병입니다. 저도 궁금해서 대한결핵협회에 들어가보니 결핵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대부분 우리가 말하는 '후진국'들입니다.
(www. knta.co.kr) 그런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는 경제수준에 비해 결핵이 많이 발생하는 국가입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는 '결핵'에 관한 지식은 우리나라에서 내놓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경제 발전과 더불어 위생 수준이 향상되면서 소위 '선진국'병이라고 불리는 '아토피'가 증가하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결핵'은 딜레마이지만 많이 호발하는 지역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특별한 다른 원인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찌 되었든 키늘이를 2주동안 잘 보살펴서 다시 부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잘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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