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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7 22:03

의사는 약만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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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한파로 인해 더욱더 어깨가 움츠러드는 겨울입니다. 진료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환자 추이로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는데, 요새는 소위 '감기'가 대세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상기도 감염증'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 부대의 진료실 수준은 초등학교 양호실 수준이기 때문에 증상만으로 진단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크리스마스 다음날은 당직을 섰습니다. 일요일 당직은 부대의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반면, 남들 쉬고 있을 때 의무대 당직실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한 기분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책도 보고 공부도 했었지만 (진짜?--;) 요새 마음이 좀 싱숭생숭한지라 그저 TV보며 멍때릴 때가 많습니다.

 추운 날씨에 당직실에 있는 온풍기를 최대로 틀어놓고 TV를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목이 칼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전 편도가 남들보다 큰 상태로 목이 쉽게 잘 붓기에 민감한 편입니다.게다가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어 환경에도 예미한 편입니다.

 

부대에 있는 냉온풍기입니다. 여름엔 에이컨, 겨울엔 히터기능을 합니다.


사진의 기계는 당직실과 더불어 환자들이 입실(혹은 입원)하는 병실과 진료실에도 한대씩 있습니다. 사실 제 손으로 청소해 본적도 없고, 청결 상태를 확인해본 적도 없습니다. 몇달전부터 소리가 커서 기계에 이상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었는데 이참에 잘은 모르지만 청소 상태를 들여다봅니다. 분명 필터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기계 하단부의 전면부를 뜯어봤습니다. 커다란 팬이 있었지만 필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옆 부분에 먼지가 잔뜩 낀 필터가 보였습니다.

청소 전 필터사진


 와우~ 먼지가 껴도 이렇게 많이 껴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 이 먼지가 그대로 온풍기를 타고 나와 제 목을 자극했던 것 같습니다. 색깔이나 모양으로 봐서 최근에 쌓인 것들로는 안보이시죠? 우선 이것을 들고나와 야외에서 턴 뒤에 물로 씻었습니다. 문득 병실과 진료실에 있을 온풍기의 필터도 생각났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병실에는 감기 환자들이 있었는데 아침에 회진돌며 불편한 점을 물으니 목이 칼칼하다고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역시나 그 곳의 필터도 위의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환자들이 아파서 치료받으러 오는 의무대가 이런 불량한 위생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니... 환자뿐 아니라 병사들에게 부끄러워졌습니다. 즉시 의무대 병사들에게 필터를 청소하라고 했습니다.

필터 청소 후 모습


 제가 전공의 시절 한 알레르기 내과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여자임에도 알레르기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교수님께서는 특이 환자들에게 잔소리 많이 하시기로 유명하십니다. 제 동생도 아토피 피부염이 너무 심해 제 소개로 진료를 받았었는데, 진료 후 잔소리에 질려서 다시는 진료를 보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전국에서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교수님은 약물보다는 생활습관 교정, 환경개선등을 더 중요시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말씀도 많아지고 때로는 환자를 혼내시기도 하십니다. 일부 환자들은 그런 교수님 진료 방식에 반발하기도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실제로 호전이 되어 교수님에 대한 굳은 신뢰를 갖는 모습을 더 많이 봤었습니다. 환자가 가지고 있는 '병'만을 보는게 아니라 병을 가진 그 '환자'를 보는 것이 소위 말하는 명의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사는 단지 약만 주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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